본문 바로가기

Get Ready/미술사

한국미술사 6. 조선 중기 회화

728x90

조선 중기는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파괴적인 대란과 사생당장으로 정치적 혼란과 불안한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화풍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특색있는 한국적 화풍이 형성되었다. 안견파 화풍과 절파 화풍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주제면에서 산수인물화, 수묵화조화와 문인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묵죽, 묵매, 묵포도 등의 한국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15세기 강희안에 의해 일부 수용되었던 절파 화풍이 16세기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유행되었는데, 김시<동자견려도>, 이경윤<고사탁족도><산수인물도> 등의 선비화가들에 의해 추구되었으며, 뒤에 김명국과 같은 뛰어난 화원들이 이를 바탕으로 강한 필치의 화풍을 이루었다. 중국 절파후기 양식인 광태사학파적 화풍은 김명국의 <달마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초기에 확립된 안견파 화풍은 중기에도 지속되었는데, 이정근 <설경산수도>, 이흥효<산수도>, 나옹 이정<산수도>, 이징<이금산수도><고사한거> 등의 작품에서 안견파의 전통이 현저하다. 초기에 천진스런 강아지 그림을 그렸던 이암에 이어 조선 중기에는 김식이 <우도>에서처럼 간일한 산수배경으로 음영을 구사하여 독특한 소그림을 그려냈다. 수묵화조화에서는 일가를 이룬 조속과 조지운을 들 수 있는데, <노수서작도><매상숙조도> 등으로 한국회화의 색다른 경지를 개척했다. 또한 탄은 이정은 <묵죽><풍죽>을 어몽룡은 <월매도>를 황집중은 <묵포도도>를 그렸음며 이들 삼적이 각 분야에서 색다른 화풍을 전개해나갔다. 즉, 조선중기에는 문인화가들이 한가지 분야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정근, <설경산수도 雪景山水圖>

 

이흥효,<산수도>

 

이처럼 조선 중기에는 전란과 사림의 당쟁으로 문인들이 삶에 불안과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관직을 떠나 자연에 은거하는 삶을 꿈꾸었다. 따라서 이러한 은일사상과 관련깊은 탁족, 어초문답, 고사한담과 같은 주제의 산수 인물화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문인들의 지조와 절개, 인품을 상징하는 묵죽, 묵매, 묵포도 등을 그린 그림이 유행한 것이다. 

 

 

 

조선 중기 절파 특징과 전개

절파화풍은 중국 명나라 초 대진과 그의 추종자, 그리고 절강성 지방양식의 화풍을 일컫는데, 북송과 남송의 화풍을 종합하여 복잡한 구도와 거칠고 호방한 필치로 힘차고 패기있고 기세당당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 초 15세기 강희안이 수용한 후, 16세기 김시, 이경윤 등이 이를 이어 크게 유행한다. 

 

15세기 강희안은 세종조의 유명한 선비화가로 명대 원체화풍과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나름대로 소화해 냈다. 그의 <고사관수도>에서는 바위에 턱을 괸채 걸터 앉아 수면을 바라보는 선비를 그려냈는데, 활달한 필차, 강렬한 흑백대비효과, 속도감 있고, 날렵한 필선, 거침없는 먹의 사용, 인물이 크게 부각된 점 등 절파계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특히 강희안만의 세련되고 짙은 문기와 고아한 풍모가 느껴진다. 명의 원체화풍과 뚜렷한 구분이 생기기 전 초기 절파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믿어진다. 

 

강희안, <고사관수도>

 

 

16세기에는 김시와 이경윤, 김명국 등 당대 대표화가들이 수용하여 크게 유행시켰다. 

김시<동자견려도>, 이경윤<고사탁족도><산수인물도>, 김명국<설중귀려도><달마도>등을 통해 볼 때, 구도, 공간처리, 필묵법, 수지법, 소경 산수 인물화 등 중국의 절파화풍 양식과 다른 한국적 절파화풍을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김시, <동자견려도>
이경윤,<고사탁족도>
김명국, <달마도>, 17세기,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17세기에는 이정, 윤의립, 윤정립, 이징, 김식, 조속 등이 이어받았고, 광태사학적인 절파양식을 보여준 김명국을 고비로 한국의 절파는 점차 쇠퇴경향을 보이다 18세기 진재해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