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올해로 61회째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특별하다. 131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시 준비 중 총감독이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총감독 카메룬 태생의 큐레이터 코요 쿠오가 정한 주제는 ‘In Minor Keys’. 음악의 단조(短調)를 뜻하지만, 동시에 ‘주류가 아닌 것’, ‘소수의 것’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유족과 비엔날레 측은 쿠오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가 남긴 원안 그대로 전시를 실행하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전시에는 참여 작가가 111팀에 불과하다다. 2024년 331팀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양 대신 깊이를 택했다는 게 미술계의 해석이지만, 참여 작가의 특성도 확 달라졌다. 직전 두 회 비엔날레가 과거의 작가를 재조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90% 이상이 생존작가다. 그중 절반 이상이 1950~1980년생 중견 세대다.
올해 행사에서는 중동·아프리카·중남미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본전시 작가 중 아프리카 출신 비중이 20%,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는 15%에 달한다. 근 10년간 열린 전시에 비하면 비율이 2배 가까이 늘었다. 카타르는 국가관이 밀집한 자르디니 공원에 신축 파빌리온을 열었다. 자르디니 공원에 신축 국가관이 들어서는 건 1995년 한국관 이후 30년 만이다. 엘살바도르와 에콰도르도 공원 밖에 사상 처음으로 국가관을 열었다.

무엇보다 올해 비엔날레는 어느 때보다 격렬한 정치 논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심사위원단 5명이 전원 사퇴하였고, 위원장인 브라질 큐레이터 솔란지 올리베이라 파르카스 등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크라이나 침공 혐의)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자지구 작전 혐의)를 겨냥하여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반인도범죄 혐의로 기소된 지도자가 있는 국가에는 황금사자상과 은사자상을 수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4년 만에 국가관을 다시 신청해 받아들여졌다. 다만 5월 5~8일 사전 공개 기간에만 기자·관계자에게 열고, 9일 정식 개막 후엔 폐쇄한 채 외벽에 작품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스라엘관은 평소의 자르디니 상설관이 아닌 아르세날레 인근 외부 공간으로 옮겨졌다. 전쟁 가해국을 배제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입장과 해당국 작가까지 차단하는 것은 또 다른 검열이라는 입장이 충돌하는 격렬한 논쟁이 예상된다. 예술은 현실 정치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
베니스 비엔날레는 또한 가장 우수한 국가관이나 작가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 시상 자체를 폐지했다. 대신 폐막일인 11월 22일 일반 관객 투표로 수상자를 가리는 ‘관객상’을 신설해 본전시 최우수 작가와 최우수 국가관을 뽑기로 결정하였다.
살아있는 기념비로 탈바꿈된 '해방공간'

한국관은 최빛나 예술감독이 1945년 일제강점기 종식부터 1948년 분단된 정부 수립까지의 한국 전후 ‘해방공간’을 주제로 전시를 꾸린다. 이번 전시가 역사적 시기를 기리는 살아있는 기념비로 탈바꿈하여 연이은 해방 실천가 새로운 세계 건설을 조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곤 작가는 한국관을 넘어 인접한 일본관까지 뻗어 나가는 구리 파이프를 활용한 작품 《 메리디안 》 을 선보인다. 이는 양국관 간 최초의 협력 프로젝트로, 한국관에 설치된 구리 파이프는 건물 내외부를 관통하며 분열시키는 동시에 순환, 연결, 치유의 과정을 암시한다. 작가의 개입으로 닫혀있던 건축 공간은 파빌리온을 끊임없이 재 배치하며 살아있는 환경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를 통해 한국관은 단순한 보호 공간이 아닌, 변화 가능한 능동적인 주체로 인식된다.
혜리 로의《베어링(Bearing)》은 소설가 강한(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을 비롯한 다양한 창작자들의 작품이 담긴 8개의 스테이션으로 구성된 설치작품이다. 폐쇄적인 구조를 거부하는 이 작품은 관람객을 삶의 필수적인 행위들을 떠올리게 하는 애도, 기억, 관찰, 삶, 기다림, 계획, 공유, 그리고 회복의 스테이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펠로우들을 한데 모아 전시의 경험적 범위를 확장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더 나아가, 베니스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관과 일본관 간의 공식 협력이 수립되었다 . 이 협력은 대화, 교류, 예술적 협력을 강조하며, 공유된 역사와 갈등의 역사를 인정하는 동시에 상호 참여와 공동 프로그램을 통해 상호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할 예정이다.
60년 작업을 통한 치유와 명상
한편, 비엔날레 기간 베네치아 시내 곳곳에서도 대형 전시가 열린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제니 사빌의 개인전과 더불어 공식 병행 전시인 이우환 탄생 90주년 회고전이 산마르코 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이우환은 일본의 모노하(Mono-ha)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한국 단색화(Dansaekhwa)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산마르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신생 미술 기관인 산마르코아트센터(SMAC) 2층에서 올해 구순을 맞이한 단색화 거장 이우환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뉴욕 디아비컨에서 열리는 작가의 회고전과 동일한 시기에 작가의 소장품 단 20여 점으로 196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60년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하고 있다.
1960년대 대규모 설치물에서 1980년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1986년 '바람으로부터', 1992년 '조응', 2011년 '대화'와 최근작 '응답'까지 간결하고 절제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1969년과 2019년에 발표됐던 '관계항'은 빽빽한 갈대밭을 연상시키며 1500여 년 전 훈족의 공격을 피해 늪지대로 피신했던 당시 로마 난민들이 갯벌에 수백만 개의 말뚝을 박아 도시를 건설했던 베네치아의 근원을 떠올리게 한다.
모노하의 선구자, 이우환 . Lee Ufan
일본 모노하(物派) 운동의 선구자 이우환(Lee Ufan)은 1960년대 자연과 인공 재료 사이의 긴장감과 물체와 공간 사이의 대화를 탐구하는 조각을 선보였습니다. 1972년 그는 자신이 만든 작품 제목을 '
e-studiolab.tistory.com
이우환의 '관계항'이 1500년 전 베네치아의 탄생을 떠올리게 하듯, 올해 비엔날레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관계항'처럼 느껴진다. 죽음과 유지(遺志), 전쟁과 예술, 주류와 비주류, 분열과 연결 — 서로 충돌하는 힘들이 한 공간에 공존하며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코요 쿠오가 남긴 주제 'In Minor Keys'는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단조는 슬프기만 한 음계가 아니라, 장조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품는다. 111팀의 작가들이, 한국관과 일본관이, 그리고 90세 이우환이 베네치아의 물 위에서 조용히 그 울림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시는 11월 22일 막을 내린다. 그날 관객의 손으로 결정될 첫 '관객상'이 어떤 작품에 돌아갈지, 그 결과 역시 이 시대 예술의 방향을 가늠하는 하나의 음표가 될 것이다.
참고.
한국경제
코리아헤럴드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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