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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Ready/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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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 8. 조선 말기 회화 19세기 조선 말기는 혼돈과 절망의 시기였다. 세도 정치 폐단으로 정치는 판단에 이르고 동학농민운동, 농민전쟁으로 사회체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청조 남종화풍의 자극을 받아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문기, 서권기를 중시하는 남종화풍이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는데, 김정희와 그를 추종한 화가들은 사의를 존중하고 형사를 경시하는 남종문인화를 토착화시켰다. 반면 조선 토속적인 진경산수화와 풍속화는 쇠퇴하였고, 이 시대 확립된 남종화풍은 근대 현대화단에 이어져 줄기찬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말기 남종화의 절정을 이끈 이는 추사 김정희이다. 실학, 금석학으로 뛰어난 학자이자 서예가였던 김정희가 그린(1844)는 남종문인화의 높은 사의의 경지를 잘 반영한 작품이다. 사제간의 지조를 지켜준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을 소나..
한국미술사 7. 조선 후기 회화 조선 후기는 특히 두드러진 새로운 경향의 회화를 발전시켰는데, 가장 한국적, 민족적 화풍이 이 시대를 풍미했다. 이는 새로운 회화 기법과 사상의 수용과 시대적 배경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중국 남종 화풍이 유행했으며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탄생하였고, 서양 화법이 전해져 후기 회화 발전에 큰 자극을 주었다. 우선 조선 후기의 새로운 경향이 구체적 모습을 나타낸 것은 대략 숙종조 후반 1700년경 전후인데, 이 전환기에 활동한 윤두서 작품들이 일부 북종 화풍을 보여주면서도 산수화에서 남종화풍의 영향이 보이고, 또 풍속화의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참고가 된다. 그리고 이어 영정조 연간에 자아의식을 토대로 대두되었던 실학의 발전이 매우 중대한 의의를 갖는데, 한국의 산천과 한국인의 생활상을 소재로 다룬 사실주..
한국미술사 6. 조선 중기 회화 조선 중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파괴적인 대란과 사생당장으로 정치적 혼란과 불안한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화풍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특색있는 한국적 화풍이 형성되었다. 안견파 화풍과 절파 화풍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주제면에서 산수인물화, 수묵화조화와 문인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묵죽, 묵매, 묵포도 등의 한국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15세기 강희안에 의해 일부 수용되었던 절파 화풍이 16세기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유행되었는데, 김시, 이경윤 등의 선비화가들에 의해 추구되었으며, 뒤에 김명국과 같은 뛰어난 화원들이 이를 바탕으로 강한 필치의 화풍을 이루었다. 중국 절파후기 양식인 광태사학파적 화풍은 김명국의 에서도 엿볼 수 있다. 초기에 확립된 안견파 화풍은 중기에도 지속되었는데, 이정근 , ..
한국미술사 5. 조선 초기 회화 조선 초기(1392~1550)의 회화는 여러 면에서 조선시대 회화의 근간을 이루었다. 문화의 꽃을 피운 세종조 연간을 중심으로 안견, 강희안을 비롯, 서예가 안평대군 등 혜성 같은 화가들을 배출하였으며, 격조 높은 한국적 화풍을 이루어 후대 회화 발전의 토대를 굳건히 하였다. 명과의 회화 교섭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중국화풍을 수용, 소화하여 한국적 화풍을 이루어냈다. 우선 북송 곽희파 화풍과 마하파 화풍을 받아들여 우리 나름의 개성있는 화풍을 이룩한 안견파 화풍이 주류를 이루었다. 안견의 , 전칭를 보면 그가 곽희파 화풍을 토대로 자성일가했음을 알 수 있다. 안견파 화풍은 일본 무로마치 시대 산수화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는데, 일본 수묵화의 비조인 수유분은 1424년 조선에 머물렀던 것을 계기로 그와 그..
한국미술사 4. 고려시대 회화 고려는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를 통해 불교를 국가적으로 장려함에 따라 다양한 불교미술품이 만들어졌다. 고려미술의 중심은 불화와 청자라 할 수 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회화가 다양성을 띠며 발전했는데, 실용적 기능 뿐 아니라 여기와 감성의 대상이 되는 순수 회화도 발전하게 되었다. 화사를 관장했던 도화원과, 산수화, 인물화, 그리고 불교회화를 통해 고려회화를 알아보자. 고려시대에는 회사를 관장하는 도화원이 설치되었는데 이를 중심으로 이녕 등 훌륭한 화원들이 배출되었고, 화원 외에도 왕공귀족, 승려 중 그림 그리는 이가 많았다. 그림의 소재도 인물, 초상, 산수, 영모, 화조, 묵죽, 묵매 등 다양해졌다. 우선, 산수화부분에서 고려시대에는 우리나라 실재 경치를 대상 삼아 그리는 실경산수화가 태동하였다. 고려 ..
한국미술사 3. 통일신라회화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고구려, 백제의 문화를 수용했으며, 당나라의 문화도 수용하여 문화 수준의 향상을 이룩했다. 삼국의 문화가 통합되고 조화되었을 것으로 믿어지나 화적이 전해지지 않아 단편적인 기록으로 추측해 볼 때,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미술은 화려하고, 원숙하며, 국제적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고신라말기 화사를 관여하는 채전이 만들어졌고, 솔거, 정화, 홍계, 김충 등 유능한 화가들이 활약했으며, 당과의 교섭으로 국정 취미의 인물화, 청록산수화, 불교회화가 활발히 제작되었다. 대표적 인물인 솔거는 황룡사에 노송도, 분황사에 관음보살상, 진주 단속사에 유마상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사실적, 기운생동의 채색화로 추정된다. 정화와 홍계는 보살상을 주로 그렸고, 김충의는 여기화가였다. 불교예술이 전성기..
한국미술사 2. 삼국시대 회화와 일본에의 영향 백제는 고구려 및 중국 남조 특히 양과 교섭했으나 역시 다른 나라의 회화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부드럽고 세련된 양식을 형성했다. 백제의 회화 사료로 전해지는 것이 적으나, 공주 송산리 6호분 벽화에서는 사신이 나타나는데, 이는 고구려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띠어, 다른 두 양식을 결합한 백제의 적응력을 보여준다. 부여능산리고분벽화의 사신, 천장의 비운, 연화문은 고구려 진파리 1호분의 것과 유사한데 훨씬 부드럽고 완만한 동감을 보여준다. 부여 규암면에서 출토된 은 삼국시대회화 중 가장 발달된 산수화를 보여준다. 좌우대칭구조, 근경과 후경의 공간, 거리감, 우거진 나무와 삼산형의 산, 울창한 솔잎의 표현이 백제적 부드러움과 온화함을 드러내어 7세기 백제회화의 특색을 보여준다. 보물 343-1호는 밑면에 계곡의..
한국미술사 1. 고구려회화 고구려 회화 삼국 중에서 가장 일찍부터 회화를 발전시켰던 고구려는 중국의 한대 육조시대 및 중국을 통한 서역회화의 영향을 수용하면서도 힘차고 율동적인 고구려 특유의 회화를 발전시켰다. 대부분이 무덤 내부벽화에 그려진 것인데 벽화가 그려진 그림은 지금까지 약 50여개가 발견되었다. 고구려회화는 고분의 구조, 내용, 양식에 따라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기는 다실묘의 형태를 띠는데 초기 고분은 주인공 초상 위주에 불교적, 풍속화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안악3호분(357년)을 들 수 있다. 중앙아시아적 천장인 밀각조정식 천장이며, 벽화의 내용은 묘주와 생전의 풍족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초상화는 삼각형의 포치속 고식의 구도, 의습처리의 요철법, 태서음영법으로 입체감, 묘주부인은 풍만한 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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