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은 작가 이배에게는 예술을 위한 훌륭한 재료이다. 작가는 고향인 경북 청도에서 인근의 소나무를 이용해 숯을 구워낸다.
숯을 굽는 과정도 예술이다. 2주간 굽고 2주간 식히는데, 천천히 오래 구울수록 광택이 좋아진다고 한다.
1991년부터 작업해 온 이수 뒤 푸(Issu du Feu·불에서) 시리즈는 숯을 잘라 캔버스에 붙이고 표면을 갈아 완성한다. 숯은 가지·뿌리·기둥 등 나무의 부위에 따라 결에 따라 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모두 같은 검정색이 아니다. 실제 숯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었기에 두께나 무게가 상당한 큰 작품이다.
숯가루를 짓이겨 화면에 두껍게 붙이는 '풍경(Landscape)'시리즈는 농부가 밭을 갈아 골을 내듯, 캔버스라는 대지 위에 자연에서 온 숯으로 고랑을 내었다고 한다.
서양사람들은 아시아 미술의 '기운생동'이나 '여백' 같은 단어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시아의 오래된 예술에 관심이 점점 높아지면서 서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019년 LA 카운티뮤지엄(LACMA)에서 열린 한국 서예전 <선을 넘어서>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이 높았는데, 추사나 퇴계의 글씨가 현대미술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획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배의 드로잉(Drawing) 시리즈는 가장 최근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이전까지 숯이라는 재료의 물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시리즈는 서예에 가까운 붓의 획으로 구성한 현대미술이다.
작가는 포브스지와의 인터뷰에서 애티튜드로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예술가라고 밝혔다.
"옛날에는 에스프리(Esprit 정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재능도 뛰어나고. 하지만 현대에서는 그것보다 애티튜드(Attitude 자세)와 프로세스(Process)가 있어야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작업을 하는, 올해 이런 걸 했으니 내년엔 이거 해야지 하는 논리가 생기고 철학이 생기는..."
새롭지 않으면 호기심을 끌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우면서 공산품처럼 균질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이 예술가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작가의 이 이야기는 우리 각자에게도 던지는 시사가 큰 것 같다. 착실한 태도로 최고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각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되기를 바래 본다.
이배 (Lee Bae, 1956년~)
1956년 경북 청도 출신
197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현재 프랑스와 뉴욕, 한국을 오가며 작업 중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수상
2009년 파리 한국문화원 작가상 수상
2013년 한국미술비평가 협회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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