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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Ready/미술사

서양미술사 22. 미니멀, 개념미술, 대지미술(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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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 Minimalism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각 예술 분야에서 출현하여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어에서 '최소한도의, 최소의, 극미의'라는 뜻의 '미니멀(minimal)'과 '주의'라는 뜻의 '이즘(ism)'을 결합한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은 기본적으로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되어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회화와 조각 등 시각 예술 분야에서는 대상의 본질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경향으로 나타났으며, 그 결과 최소한의 색상을 사용해 기하학적인 뼈대만을 표현하는 단순한 형태의 미술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미술이론가이기도 한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Untitled(1965) Donald Judd

 

 

음악에서의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 인기를 끌었던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단조롭고 반복적인 합주곡처럼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박자에 반복과 조화를 강조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4막짜리  오페라 ≪ 해변의 아인슈타인 (Einstein on the Beach)≫ (1976) 필립 글래스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도 소재와 구조를 단순화하면서도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타났으며,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리차드 풀러(Richard Buckminster Fuller)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리차드 풀러

 



미니멀리즘은 패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장식적인 디자인을 가능한 제거한 심플한 디자인이나 직선적인 실루엣의 선정적인 옷, 또는 최소한의 옷으로 훌륭한 옷차림을 연출하는 방법 등이 모두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미니멀리즘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유만을 주장하는 금욕주의 철학, 복잡한 의식을 없애고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종교적인 흐름 등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대표, 질 샌더와 매킨토시와의 19FW 콜라보레이션 화보

 

 


 

개념미술 . Conceptual Art

미니멀 아트(minimal art) 이후에 대두한 현대미술의 경향으로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미술적 제작 태도를 가리킨다.

좁게는 기호나 문자 등의 비물질에 의한 표현양식부터 넓게는 퍼포먼스나 비디오 아트같이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새로운 미술형태와 대지미술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드로잉이나 사진으로 볼 수 밖에 없는 미술형태를 포괄한다.

공식적으로는 1960년대 후반에 미국의 평론가 존 펠로 John Fellow가 점차 지적인 사고 조작을 중요시한 나머지 어떤 극한에 도달한 상태의 현대미술 양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개념미술은 1960년대 들어 더욱 상업화되어 가던 미술계와 특히 동시대 미술이었던 미니멀 아트로 대표되는 전후 형식주의 미술에 대한 반대를 기치로 대두하였다. 개념미술이라는 명칭 자체도 1960년대 초에 과격한 반 예술적 이벤트를 시도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1921~1986), 백남준 등의 플럭서스(Fluxux는 1960년대에 형성된 국제적인 전위예술가 집단으로,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 등을 뜻하는 라틴어 플럭스Flux에서 유래) 멤버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개념미술가들은 그 때까지의 미술의 한계에서 탈피하기 위해 페미니즘, 대중문화 기호학 등을 이용하여 전통적인 미술작품과 닮은 구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 냈다.

 

그러나 개념미술의 선구자는 마르셀 뒤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13년 미술가의 역할에 대하여 “물질을 교묘하게 치장하는 데 있지 않고 미의 고찰을 위한 선택에 있다”는 정의를 내렸다. 이것이야말로 개념미술의 근본적인 미학이다. 뒤샹은 《레디 메이드:Ready-made》와 그 이후의 작품들을 통하여 형식과 기교 및 회화의 낭만성을 버리고 일상에서 발견되는 평범한 대상물을 미술작품으로 도입하였다. 이러한 작품활동은 예술 일반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결과적으로 그는 아무런 미술작품도 제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일상생활에 미술개념을 집어넣으면서 그 자체가 미술이요, 조형활동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이미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창조자로서의 존재에서 벗어나 미술연출자나 미술제조자로 빠져들어갈 함정을 예견하였던 것이다. 뒤샹의 작품은 1960년대 말기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미국의 신진 개념미술작가들이 계속 추구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다. 개념미술의 또 다른 원류는다다이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개념미술의 대표적 작가인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는 사전의 낱말풀이를 그대로 신문에 실어 작품으로 발표하였고, 더글러스 후에불러(Douglas Huebler) 는 지도와 도면에 기록을 남긴 《지속적인 단편들》이란 명칭의 작품을 내 놓았다. 특히 개념미술은 상품으로서의 작품을 거부함으로써 미술작품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을 약화시켰다. 이것은 곧 수집가 ·미술가 및 전통적인 미술작품에 적용하는 모든 가치기준을 거부하는 공격의 화살이다. 따라서 이 미술가들은 자신을 장인(匠人)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거의 모든 사물을 미술작품으로 제시하게 한다. 그들의 주제는 일반적인 것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것도 포용한다. 사소하거나 심오한 것, 사실이거나 추상적인 그 어느 것도 가리지 않는다. 한정된 주제와 꾸며낸 조형이 아니라 가능성의 전달을 의도한다. 따라서 작품은 조형물의 결과에서가 아니라 거기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은 미술가의 관념에서 우러나온 가치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감상자는 메티에(métier:전문적 또는 특이한 기법) ·마티에르(matière)를 부정한 작품 또는 작품의 흔적을 대하면서 거기에서 작가가 추구한 과정 또는 관념을 찾아야 한다.

 

 

 

주요 작가

#1. 조셉 코수스 Joseph Kosuth (1945~)

 

초기 작품에는 어떤 사전적 의미를 두지 않았으나, 1965년 이후 작품의 기본적 요소로 언어를 중시하였다. 언어역시 초기에는 백과사전적 정의를 분석하는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철학적이거나 심리학적인 텍스트로 폭을 넓힘

미술사에서 개념미술의 아이콘이라 불리우는 작가

 

세 개의 의자(One and Three Chairs), 1965 ⓒ Joseph Kosuth 

 

<세 개의 의자>는 조셉 코수스의 대표작으로 실제 의자, 의자 사진, 의자의 정의로 이루어진 레디메이드(의자실제)/ 자료형식(의자사진)/ 언어(의자정의)/ 의자가 미술관의 작품에 놓인 것은 마치 뒤샹의 변기처럼 개입(의자의 맥락일탈) 이라 볼 수 있다.

 

 

 

#2.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1921~1986)

독일의 예술가로 조각, 드로잉, 설치미술, 행위예술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주장하며 '사회조각'이라는 확장된 예술개념을 통해 사회의 치유와 변화를 꿈꾼 작가이다.

 

I like American and America likes me, 1974 ⓒ Joseph Beuys

요셉 보이스의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도 나를 좋아한다>의 내용은 이렇다. 

미국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보이스는 펠트 천에 싸야 들것에 실린 채 구급차를 타고 르네 블록(Rene Block)갤러리로 향했다. 

갤러리 바닥에 건초더미, 펠트천, 월스트리트 저널 등을 깔아 놓고, 그 곳에서 코요테와 3일 동안 생활했다. 

보이스는 커다란 펠트 천을 두른 채 지팡이만 내놓고 코요테와 대화를 시작했고, 

코요테가 보이스에 익숙해지자 펠트 천을 벗고 보요테와 함께 창 밖을 바라보는 행위를 했다. 

3일 후 보이스는 갤러리에 도착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외부와 일체 접촉하지 않은 채 미국을 떠났다. 

 

보이스의 작품 중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1965)>라는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3. 백남준 (Nam June Paik, 1932~2006)

기술을 예술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한국태생의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 예술가, 작곡가, 전위 예술가이다.

 

다다익선, 1988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대표작품 중 하나로 CRT TV 1,003대를 가지고 제작한 높이 18.5m의 타워이다. 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1988년 10월 3일 제작되었고, CRT TV 1,003대는개천절을 의미한다.

현재는 불이 꺼진 작품의 형태만 볼 수 있는데, 생산이 중단된 CRT TV의 노후화, 유지·보수 문제로 2018년 가동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몇 년간 다양한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원형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고, 3개년에 걸친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시행할 계획에 있다.

복원된 작품은 2022년경 확인할 수 있다. 

 

 

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tal U.S.,Alaska, Hawaii, 1995

 

<전자 초고속도로: 미국대륙, 알래스카, 하와이>는 스미스 소니언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으로 336개의 TV, 50대의 DVD플레이어, 거대한 다색 네온 튜빙으로 다양한 연방제 국가를 표현하고 있다. 각 주별 색다른 정체성과 특징을 비디오 클립으로 표현한다.

 

 

 

#4. 다니엘 뷔렌 (Daniel Buren, 1938~)

 

2012년 파리 그랑 팔레에서 선 보인 '불꽃놀이 기상천외(Excentrique) 전'

 

동아일보사에 전시중인 '한국의 색', 동아일보 제공

 

 


 

대지미술 Earth Art, Land Art

1960년대 후반 영국과 독일, 특히 미국에서 성행했던 미술 경향. 그 용어는 대표적인 대지미술 작가인 스미슨 Robert Smithson(1938~1973)이 소설가 앨디스Brian W. Aldiss의 동명의 과학소설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전람회의 이름에 사용함으로써 일반화 되었다.

 

대지미술은 1960년대의 두가지 주요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다. 미술의 상업화에 대한 반대와 당시에 부상한 환경운동에 대한 지지가 그것인데, 후자는 ‘땅으로 돌아가자(back-to-the-land)’라는 반도시화주의와 지구라는 혹성에 대한 정신적인 자세 등으로 나타났다. 대지 미술가들의 폭넓은 방법과 목표는 다양한 예를 통하여 잘 나타난다.

 

손피스트 Alan Sonfist(1946~)는 도시의 현장을 조경하여 그 장소를 예전의 자연적 상태나 선사시대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고 시도했으며, 홀트 Nancy Holt는 스톤헨지를 연상시키는 천문학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건축적인 구조물을 세웠다.하이저 Michael Heizer와 스미슨은 고대의 무덤 봉분으 연상시키는 거대한 대지 조각을 창조해 내기 위해, 미국 서부 사막에서 수톤에 이르는 흙과 바위를 퍼냈다. 롱 Richard Rong(1946~)운 그가 돌아다닌 자연 풍경과 도중에 그가 일시적으로 재배치한 바위와 꽃을 아름답게 구성된 사진 속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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