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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Art & Life/후 이즈 Who is

열정 가득한 대한민국 패션의 역사, 진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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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진태옥은 1965년 여성복 '프랑소와즈'를 시작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유니폼을 디자인하고, 1990년 서울패션디자이너협의회(SFAA)를 창단하였습니다. 1993년부터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고, 1999년 영국의 예술전문 출판사 파이돈이 선정하는 '20세기를 빛낸 패션인 500인'에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선정되는 등 전 세계에 한국 패션의 우수성을 알려왔던 한국 패션의 선구자입니다. 

 

 

디자이너 진태옥

 

 

 

 "흙집 창문 앞에 오라버니의 흰색 셔츠가 걸려 있는데, 그 셔츠에 빛이 투과됐을 때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빛이 투과돼서 섬유조직이 투명하게 드러나던 광목은 그 어떤 비단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그 때부터 광목은 '진태옥의 옷'을 말할 때 빠져선 안 되는 중요한 소재가 됐다" 

 

 

 

화이트 셔츠

 

1948년 1.4후퇴 때 제주도로 피난을 갔던 때 본 광목 셔츠에 대한 감동이 디자이너 진태옥을 지탱하고 있다며 화이트 셔츠에 대한 애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남성의 빅 셔츠를 여성이 입고 약간 뒤로 젖혀서 목을 드러내면 아주 섹시하다. 남성과 여성의 만남, 그 중성적인 지점이 굉장히 섹시하게 보이는 건데 내가 화이트 셔츠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태옥 디자이너가 평생 사랑한 한국 전통 소재 광목

 

 

 

노라노 선생님을 보며 디자이너 꿈꿔

 

대학에 떨어지고 방황할 때, 서울 광교 옆을 지나다 패션디자이너 노라노의 의상실을 발견했고, 노라가 되기까지의 풀 스토리를 듣고 나선 패션 디자이너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후 힘들었던 시집살이의 탈출구로 몰래 의상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요, 밤새 돌리던 재봉틀 소리로 금새 들키게 되었습니다. '옷을 해야 겠다'고 시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내고 정식으로 복장학원에 다니게 됩니다. 

 

1965년 프랑스에서 외교관을 지낸 선배 언니의 남편에게 부탁해서 '프랑소와즈' 라는 이름의 숍을 낸 것이 디자이너로서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너의 옷은 시 诗'

 

1993년 파리 컬렉션에 첫 진출하였을 때를 디자이너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첫 컬렉션이 시작되기 전, 갑자기 무대 뒤의 모델들이 수근거려, '한국 디자이너라고 업신여기나'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델들은 '수지가 왔다'며 웅성거렸고, 쇼가 끝난 후 진태옥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자기를 수지 맨키스라고 소개한 여인은 '내가 너하고 악수하기 위해 5분을 기다렸다.'며 웃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패션 저널리스트인 수지 멘키스는 진태옥을 '너의 옷은 시'라고 평하였습니다. 이 때의 인연으로 수지 멘키스는 진태옥의 50주년 기념 책 추천사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디자이너 진태옥은 90년대에 파리컬렉션에 나갔던 것은 "돈을 쓰기 위함이었다. 한국에도 이런 패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 노력의 결과일까요? 진태옥은 1999년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영국의 예술전문출판사 파이돈이 뽑은 '20세기를 빛낸 패션인 500인' 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돈도 경험도 없이, 힘들고 무모하게, 지금까지

 

서울패션위크에도 진태옥의 노력은 숨어있습니다. 2000년 시작된 서울패션위크의 모태는 SFAA컬렉션이었고, 그 SFAA컬렉션을 초창기에 이끈 수장이 진태옥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파리 컬렉션 같은 것을 해 보자고 의견이 모였던 디자이너은 일본 패션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에서 VIP 고객들에게 파리 컬렉션 티켓을 준다는 정보를 얻고, 무작정 일본으로 가서 600만원 어치의 옷을 삽니다. 그리고는 무작정 컬렉션 티켓을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옷을 다 반품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요, 그 결과 티켓 한 장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구한 티켓 한 장으로 당시 스파 설립을 준비하던 7명의 디자이너(진태옥, 박윤수, 한혜자, 설윤형, 박항치, 오은환, 루비나)는 이세이 미야케 패션쇼를 관람합니다. (1장으로 7명이 들어갈 수 없으니, 진태옥 선생님이 먼저 입장하고 티켓을 밖으로 던지시는 방법으로 입장하셨다고 해요)

 

쇼가 끝난 후, 디자이너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처한 입장이 너무 한심하셨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럼에도 힘내서 해 보자고 시작하셨던 것이 스파SFAA였습니다.

 

 

 

너무 달라져

 

1985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전에 참가하였던 디자이너는 한불수교 130주년 전시에도 참여하였는데요, 격세지감을 온 몸으로 체험하셨다고 합니다. 30여년 전, 파리 한 구석에서 교민들만 참여한 가운데 치뤘던 전시였는데, 이제는 파리장식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게 되고, 에펠탑 앞에서 싸이의 노래와 춤을 따라할 정도로 한국과 한국문화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코리아 DNA

 

디자이너 진태옥은 우리 정서 문화의 DNA가 디자인 영감의 근원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문화와 전통, 정서와 예술을 잊지 않고 작업을 하기를 권면하며, 우리가 가진 문화적 자산과 현시대 정보들을 전부 다 흡수해 내 안에서 여과시킨 후 표현한다면 지금 이 시대에 맞는 나만의 아이디어와 감각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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