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해 말부터 20년 3월까지 진행했던 《고향 gohyang: home》 이라는 전시입니다. 비서구권 미술전시 세 번째 시리즈로 아프리카(2015), 라틴(2017)에 이어 중동지역의 현대미술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중동은 '한번 잘 살아보기 위해' 오일머니를 찾아 떠났던 한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기억이 있는 곳이죠, 최근에는 만수루와 함께 난민문제로 새롭게 다가오는 지역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뉴스에서만 보았던 1970년대 근로자들의 기록들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던 전시라 재미있었습니다. 한편으론 나라와 고향을 잃고 부유하는 자들의 기록을 살펴보며 깊은 먹먹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옛날 '나라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냐?' 고 줄곧 들었었던 어른들의 말씀과 한동안 외국인으로 살았던 기억들이 떠올라 몇가지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었습니다.
오늘은 전시되었던 많은 작품 중 제게 인상적이었던 작품 세가지를 소개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당시는 물론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제게 울림을 주는 작품들입니다.
첫번째,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있었던 내전 기간 동안 전쟁으로 감염된 물을 소독하기 위해 시민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방법을 재현한 작품 <아랍어로 된 갈증의 뉘앙스>입니다. 병에 붙은 종이에 쓰여진 아랍어는 심할 경우, 죽음까지 이를 수 있는 '갈증'의 여러 단계를 사전적으로 서술합니다. 이 단어들은 이란의 작가 알 사알리비(961~1038)의 저술에서 발췌되었습니다.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각종 페트병 사이로 투과되는 빛을 보면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두번째는 비디오와 설치가 결합된 작품입니다.
정치적으로 불순물이라 여겨지는 '생각' 혹은 '피부색'을 지워내듯이, 거뭇거뭇한 물감이 묻어있는 사람들을 일려로 세워 두고 몸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 '씻기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 아델 아비딘의 <청소>입니다.
물대포를 들고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과 반대편에서 물대포를 맞고 있는 사람들의 앞모습. 그리고 주변의 구경꾼들로 이루어진 화면의 구성은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에 레퍼런스를 두고 있습니다.
위 사진의 가운데 커다란 천은 화면 안의 바닥에 깔린 천이고, 왼쪽의 의상은 물대포를 맞은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옷입니다. 당시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작품인데, 다시 보아도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이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마지막은 70년대 중동 파견 근로자의 미출간된 시집입니다.
저 역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외국으로 파견되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이 시를 쓴 근로자의 외로움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시립미술관이나 국립현대나 부쩍 운동권 색채가 짙어져서 멀리하고 있었는데요, 이 《고향 gohyang: home》 이란 전시 역시 운동권 색채가 있음은 분명하나 이토록 깊은 울림을 오래도록 주는 것을 보면 그들의 메세지를 잘 전달한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Review > 직접 가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이스 갤러리가 선보이는 빛, <Bending Light> (0) | 2020.07.26 |
---|---|
빅 아이즈 : 마가렛 킨 회고展 (0) | 2020.07.14 |
Eddie Kang.ZIP : We will be alright (1) | 2020.06.05 |
SOUNDMUSEUM: 너의 감정과 기억 (0) | 2020.06.04 |
윤형근 1989-1999 . YUN HYONG-KEUN (0) | 2020.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