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에 대한 첫 기억은 88올림픽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엇이든 꿈꾸는 대로 될 수 있었고, 무엇이든 가능했던 80~90년대, 백남준이란 아티스트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렸지만, 백남준이란 사람이 정말 유명하구나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초중고교 때 대부분 서울대공원, 또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소풍을 자주 갔었다. 백남준의 작품은 항상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난해했고, 아름답다고 느껴야 하는 것인지, 멋있다고 느껴야 하는 것인지 모호했다. 정확히는 무엇을 봐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난해하고 유명한 아티스트인 내 기억 속의 백남준을 서울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한국 미술계는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아마도 몇해 전, 타계하셔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서울 창신동에 위치하고 있는 그의 기념관을 방문하고 왜, 지금, 그를 이토록 조명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서울시가 2015년 창신숭인 도시재생 선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197번지 일대 집터에 있던 작은 한옥을 매입했다. 1960년에 축조된 총 면적 93.9㎡의 단층 한옥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노화된 부분을 교체 후 재 조립하는 공정으로 리모델링 되었고, 서울시립미술관이 조성과 운영을 맡아 2017년 3월에 개관했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고, 1950년 한국을 떠나 일본, 독일,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다가 2006년 미국에서 타계했다. 그는 노마드의 삶을 살았지만, 한국에서 보냈던 시간을 예술의 모태이자 사상의 기원으로 여겼다.
백남준은 1984년 30여년 만에 귀국한 후 2006년 타계할 때까지 '과거를 통한 미래 여행'을 하며 무의식 속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원천으로 예술적 여정을 이어갔다. 현재 진행 중인 개관전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는 한 백남준의 기억과 상상의 여정을 따라가는 백남준의 기억 여행을 보여 준다.
백남준의 집은 당시 개통된 동대문 전차역에서 가까웠는데, 백남준의 작품 <1936년의 서울 거리>(1988)에는 동대문, 서린동, 수송동, 창신동, 삼선동, 종로 등 서울의 동네 이름이 적혀 있다.
1986년 백남준은 당시 신축공사 중이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영구 설치될 신작 구상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규모로 신축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진입부에서 모든 관객과 만나게 될 중요한 작품으로 처음에 백남준은 러시아의 타틀린이 구상했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1919~20)와 같은 나선형 탑 형태의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실현되는 과정에서 몇차례 수정을 통해 모니터가 동심원의 형태로 퍼져나가는 지금의 <다다익선>(1988)이 탄생하게 되었다.
백남준은 1930년대 '자본론'을 읽고, 마르크스에 심취했지만 본격적인 혁명의 대오에 나서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1년 쓴 <59세의 사유>라는 에세이에서 청소년기에 쇤베르크와 마르크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기술하는 등 마르크스 사상이 자신에게 매우 중요했다고 밝힌다.
"마르크스는 제 청년기의 질환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마르크스주의에 빠졌습니다. 저는 그런 이상하고도 강렬한 허영심이 저 뿐 아니라 지식인 전체를 향해서 어떻게 그렇게 밀려들 수 있는 것인지, 그런 미신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며 왜 인간을 사로잡을 수가 있는 것인지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김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백남준 (시사저널, 1995)
<백남준의 거의 모든 것 - 백남준 버츄얼 뮤지엄>은 백남준의 연혁, 전시경력, 작품, 어록 등 백남준의 예술과 생애에 관한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는 버츄얼 뮤지엄이다. 관객은 아날로그 TV 수상기 앞에 앉아 다이얼로 메뉴를 선택하며 백남준에 대한 데이터 세계를 유영할 수 있다. 초기 화면에는 급진적 전위예술운동인 플럭서스의 개념지도를 배경으로 플럭서스의 주요 작가로서 백남준이 벌인 퍼포먼스의 모습과 소리가 흐른다.
<백남준의 거의 모든 것 - 백남준 버츄얼 뮤지엄>은 향후 백남준 기념관에 축적되는 백남준 관련 이야기와 정보를 업로드할 수 있는 열린 데이터베이스 미디어로 설계되었다.
백남준은 과거·현재·미래가 뫼비우스 띠처럼 순환하고 예술과 삶, 역사가 우연과 필연의 조화 가운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해간다고 믿었다. 그의 신념을 닮은 백남준 기념관은 과거의 백남준 뿐 아니라 현재의 백남준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전시소개
전 시 명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전시기간 계속
관람시간 10am~ 7pm
전시장소 백남준 기념관
관람요금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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