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은 대한민국의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며 잡지 발행인이기도 했고 예술가들의 후원자이었다. 김중업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 건축 1세대로 평가받으며, 한국건축사에서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다방면에 걸친 한국문화에 대한 지원으로 인해, 그는 1977년 미국의 잡지 타임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후원가인 로렌초 데 메디치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 위키백과에서
박정희 정권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왜색논란, 그리고 관변 건축가로서의 비판도 있지만, 건축에 한국 전통을 담아내려는 노력, 그리고 후진양성과 여러 방면의 문화를 후원하고 발전시키려 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건축가입니다.
세운상가
1968년
건물의 지상 1층은 자동차 통로와 주차공간으로 하고, 3층에 인공데크를 건설하여 주변에 상가를 배치하여 철저하게 보행자 전용 통로를 확보했다. 상가 윗층 아파트 부분에는 건물을 유리로 덮는 아트리움 공간을 도입하였다.
국립 부여박물관
1967년
국립부여박물관은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그가 더욱 성숙한 건축가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원서동 공간사옥
1976년
김수근이 남긴 작품들 중에서 백미 중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공간 사옥이다. 그 자신의 아틀리에인 이 건축물은 1970년대 초와 후반에 두 차례에 걸쳐 덧대어 지어진 검은 벽돌 건물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물의 선두에 서 있는 작품이다. 공간 사옥은 밖에서 보면 좁고 긴 네모반듯한 덩어리들로 조합되어 있고, 외부 벽은 검은 벽돌로 쌓아 지은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한 내부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공간사옥의 내부 구조는 매우 복잡하여, 서로 다른 높낮이를 갖는 열 개가 넘는 바닥층이 내부 방들을 이루며 복잡한 계단길을 통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일반적인 건물을 기준으로 하면 지하 2층에 지상 5층 규모지만, 공간 사옥은 이처럼 일반적인 규모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를 거부한다. 실제로 안으로 들어서면 계단참 몇 개를 올라 다른 방들이 만들어지고 또 옆에 나 있는 몇 개의 계단참을 따라 또 다른 방이 높이를 달리하며 연결되곤 한다. 그렇게 복잡한 방들이 구석구석 박혀 있지만 공간은 꼭 필요한 정도의 크기로만 구성되어 있다. 층고(層高- 건물의 층과 층 사이의 높이)를 낮게 해 아담하고 인간적인 척도를 보여주는가 하면, 복도나 계단 등 통과하는 동선도 그냥 두지 않고 약간의 빈 곳이나 벽면까지도 수납공간이나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사용함으로써 좁은 공간을 폭넓게 사용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 공간을 직접 짓고,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활동무대를 만들어주었으며, [공간]이라는 종합예술 건축문화 잡지를 창간하여 건축과 미술 등 문화예술을 널리 보급하는 데 정열을 바쳤다. 그는 일생동안 그의 작업 공간을 통해 수많은 직능과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은 형식적인 만남이 아니라 늘 무언가를 도모하며 일을 꾸미고, 문화와 예술이 풍성한 세상을 위한 생각으로 가득한 생명력 넘치는 만남이었다. 그는 다른 문화예술 분야를 ‘후원’함으로써 건축의 폭을 높였고, 그로써 건축이 문화예술의 한 축을 이루는, 그것도 매우 중요한 축임을 두루 인식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우리 삶의 질과 관련하여 사회와 문화와 예술을 보는 안목이 일상을 통해 폭넓고 풍성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문화기획자였으며 예술창조자였다. 김덕수 사물놀이를 한국의 전통예술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예술로 키운 장본인인 그는, 공옥진의 ‘병신춤’ 역시 국제무대에 소개하여 우리 춤의 진수를 알리는 등 선구적이고 예술가적인 안목을 발휘했다.
※'한국 현대 문화예술사를 새로 쓴 건축가 (건축가, 이주연)' 에서 인용
한편, 원서동의 전 공간 사옥은 지난 2014년 등록문화재 제586호로 지정되었고, 같은 해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문을 열었다.
잠실 종합운동장
1977년
설계 총 책임자이자 주 경기장을 직접 설계, 한국적인 선을 잘 살려 냈다는 평을 받았다.
국립 청주박물관
1979년
경동교회
1980년
경동교회는 외관에서 십자가를 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기도하는 손 모양이 떠오르는 건물 모양, 뒤로 돌아가야 입구가 나오는 구조 등 독특한 건축 양식을 자랑하고 있다.
김수근은 포근한 어머니의 모태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국립 진주박물관
1984년
김수근 1931~1986
학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2년 중퇴(1951)
동경예술대학교 건축학과 졸업(1958)
동경대학교 석사 취득(1960)
동경대학교 박사 수료(1962)
주요 작품 연보
1959 국회의사당(남산) 현상설계 당선안
1961 워커힐 힐탑바
1963 자유센터
1967 부여박물관, 한국기술연구소(KIST)본관
1970 오사카 EXPO'70 한국관
1971 공간사옥
1974 서울대학교 예술관(미술대학, 음악대학)
1975 이란 엑바탄 주거단지
1977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수단국 영빈관, 주인도 대한민국대사관
1978 마산 양덕성당, 문예회관 전시관 및 공연장
1979 국립청주박물관
1980 경동교회, 새마을지도자연수원, 강원어린이회관
1982 주카타르 대한민국대사관
1983 인천상륙작전기념관
1984 국립과학관
1985 주미 대한민국대사관저, 불광동성당, 지하철 경복궁역사, 말레이시아 사라와크 주립 스포츠 콤플렉스,
1986 치안본부청사, 서울지방법원청사,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수영장, 자전거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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