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의 건설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역사의식을 고찰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과거 베를린에 살며 핍박받았던 유명한 유대인 작가, 작곡가, 예술가, 과학자, 시인 등의 유대인의 흔적을 유대인 거주지에서 찾아, 거주지를 선으로 연결하여 표현했습니다. 박물관의 외형을 이루는 날카로운 선들은 유대인 다윗 왕을 상징하는 별의 이미지이며, 별이 움직이는 형태로 표현하는 등 유대인의 흔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박물관 내부는 곧게 뻗어 나가는 복도에서 조각조각 흩어지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는데요,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방향 감각을 잃게 합니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어떤 곳으로도 탈출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유대인들이 느꼈던 심리적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칼로 난도질한 듯 가늘고 긴 불규칙한 창문들은 수용소에서 대량학살된 유대인들의 불안, 공포, 죽음을 연상케 합니다.
유대인박물관의 소장품은 학살된 유대인들의 사진이나 영상물을 비롯해, 그들이 가스실로 끌려갈 때 입었던 피 묻은 옷, 신발 등을 전시하여 그때의 참상을 기리는 데 의의를 뒀습니다. 공간 곳곳에서 유대인이 겪은 고통과 공포의 감정 표현에 충실히 하고자 애쓴 유대인 건축가의 정신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 (Daniel Liebeskind)는 1946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유대인입니다. 리베스킨트는 911테러 메모리얼 스페이스*를 설계하는 등 아픔과 회상을 건물과 공간에 그대로 반영하는 건축가입니다.
리베스킨트는 도시 디자인과 건축 설계 작업에 신 비평과 학제간 연구의 관점을 적용한 이론적 접근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도시와 문화적 환경의 결합을 중시하는 태도는 이스라엘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역사와 건축이론을 공부하면서 무대디자인과 설치를 했던 경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리베스킨트는 유대인 박물관이 단순히 그 기능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 이상의 도덕성과 의미를 살려내려고 애썼다고 말합니다. 자유 베를린의 통합과 그 이후의 변화를 한데 모아,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지속적으로 현대의 모습 위에 얹어 놓고 또 어떻게 새로운 미래로 유도해 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 의식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유대인박물관에서 지금 보여 드리는 이곳이 저에겐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미 몇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 곳에서 받았던 충격은 여전합니다. 유대인 학살과 관련해서 기사와 영화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인간이 인간을 죽였다는 의미에 대해 이 곳에 도착해서야 겨우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메나슈 카디쉬만(Menache Kadishman)의 <낙엽> 이란 작품때문인데요,
관람객은 각기 다른 유대인의 얼굴을 형상화한 주철 조각을 밟고 지나갊으로써, 당시 나치에게 무참히 학살된 유대인의 참혹하고 참담했던 현실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 곳에서 시대의 아픔, 민족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울림은 여전히 남아있죠.
보통 우리는 '우리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어.' 라고 보여주는 것에만 급급한데, 그에 반해 아픔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모습이 우리와 상당히 다르게, 그리고 훨씬 세련되게 표현되었기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면, 얼마 전, 자료조사 차원에서 국무총리실 조직도를 보다가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세월호가 가슴아픈 일이었고, 제 개인적으론 결혼을 준비하고 있던 때라 잊을 수 없는 기억이긴 한데, 정부 조직 안에 '세월호피해자 지원·추모사업 지원단' 이란 조직으로 10여명이 넘는 인원이 조직되어 있을 일인가 싶었거든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던...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디자인한 '911테러 메모리얼 스페이스'도 잠시 볼게요.
9·11테러는 미국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월드트레이드센터를 폭파시킨 2001년 일어난 항공기 납치 동시다발 자살 테러 사건입니다. 당시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충격에 빠트렸던 엄청난 사건이었죠.
폐허가 된 곳에 다시 건물을 짓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미국은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다음과 같은 기념관을 건축합니다.
원래 두 개의 쌍둥이 건물이 있던 곳에 테러로 인해 흘린 유가족들과 미국인의 눈물을 상징하는 안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설계하였고, 폭포의 테두리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희생자들은 가족, 직장 동료 등 서로 연이 있었던 사람끼리 모아져 있어, 유족들이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돕도록 했습니다.
원치 않은 아픔은 국가 뿐 아니라 개인,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유대인의 아픔을 보편적으로 임팩트 있게 전달하여, 그 아픔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였던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은 저에게
아픔을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서, 공감을 얻을 수도 있기도 하고, 외면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관람시간 10am ~ 8pm(월요일은 ~10pm)
홈페이지 www.jmberli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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